무너졌던 구단, 그들의 눈물겨운 재기 이야기
축구 구단의 세계는 그라운드 위의 승패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구단 경영진의 재정 운영, 투자자의 방향성, 팬들의 충성도까지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많은 명문 구단들이 역사적인 성적과 화려한 스타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의 재정난으로 무너졌고, 그 중 일부는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섰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재정 파탄을 겪은 후 극적으로 회생에 성공한 4개의 구단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재정 개선’이 아니라, 축구 본연의 정신과 지역사회의 연대, 그리고 팬들의 헌신으로 다시 빛을 되찾은 진정한 부활의 사례입니다.
A.C. 파르마 – 파산과 리부트, 다시 세리에 A로
1990~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세리에 A를 풍미하던 파르마는 부자 구단 중 하나였습니다. 크레스포, 부폰, 칸나바로, 베론, 네스타 같은 스타들이 줄줄이 활약하던 이 팀은 유로파리그(옛 UEFA컵) 우승 등도 경험했죠.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모기업 파르말랏의 부도, 운영진의 부실한 재정 관리, 그리고 세금 체납이 겹치면서 결국 2015년 파산을 선고받고 아마추어 리그인 세리에 D까지 강등됐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파르마가 아니었습니다. 지역 기업가들과 팬들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법인으로 ‘파르마 칼초 1913’을 재창단하고, 철저한 예산 관리와 지역 밀착형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팬들과 자원봉사자들은 경기장 관리부터 선수 숙소 정비까지 손수 나서 구단을 도왔고, 파르마는 단 3년 만에 세리에 A로 복귀하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이들의 부활은 단지 구단의 회생이 아니라, 이탈리아 축구 시스템의 자정 작용과 커뮤니티 정신의 힘을 보여준 모범 사례로 꼽힙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빚더미 위에서 일군 ‘노란 기적’
2000년대 초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유럽 대항전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뒀지만, 과도한 지출과 실패한 투자로 인해 2005년경 극심한 재정 위기에 빠졌습니다. 선수 연봉 지급이 밀리고, 구단은 파산 직전의 위기에 몰리게 되죠. 이때, 도르트문트는 그야말로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구단을 도운 건 다름 아닌 전통의 라이벌 바이에른 뮌헨이었습니다. 뮌헨은 2003년, 이자 없이 200만 유로의 긴급 자금을 빌려주었고, 도르트문트는 그 돈으로 일단 당장의 급한 불을 껐습니다. 이후 도르트문트는 연봉 구조 조정, 유소년 육성 중심의 철학 전환, 그리고 철저한 재정 구조 개선에 착수합니다.
그 결과, 유소년 출신 선수들과 저비용 고효율 영입 정책을 통해 위르겐 클롭 감독 체제 하에서 분데스리가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등 화려한 성과를 일궈냅니다. 도르트문트는 재정적으로도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며 ‘건강한 클럽 경영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레인저스 FC – 스코틀랜드 명문, 4부리그에서 다시 정상으로
스코틀랜드 프로축구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레인저스 FC는 셀틱과 함께 ‘올드 펌 더비’로 유명한 구단입니다. 그러나 2012년, 수년간의 세금 체납과 잘못된 재정 운영 끝에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리그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고, 결국 4부 리그(스코틀랜드 리그 투)로 강등되었습니다.
많은 팬들이 레인저스의 몰락을 안타까워했지만, 이들은 그 어느 구단보다 빠르게 반등을 시작합니다. 새 구단주 체제 하에서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다시 마련하고, 무엇보다 팬들이 시즌권을 포기하지 않고 경기장을 꽉 채우며 팀을 지지한 덕분에 선수들도 희망을 품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레인저스는 한 시즌씩 각 리그를 차례로 승격하며 4년 만에 1부 리그 복귀에 성공했고, 2020-21 시즌에는 무려 무패 우승으로 리그를 제패하며 완전한 부활을 선언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지 스포츠의 승리가 아니라, 클럽의 정신과 공동체가 지켜낸 이야기로 평가됩니다.
마요르카 – 한국 팬들의 ‘이강인 팀’이 겪은 위기와 반등
많은 한국 팬들이 ‘이강인의 전 소속팀’으로 알게 된 RCD 마요르카도 한때 재정 위기를 겪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 구단은 지속적인 적자 운영과 부채 누적으로 인해 스페인 축구협회로부터 재정 경고를 받았고, 이후 리그 강등까지 이어지며 구단 존립 자체가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2016년, 미국 출신 전 NBA 스타 스티브 내쉬와 비즈니스 파트너인 로버트 사라버가 구단 인수에 나서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이들은 구단 운영의 현대화, 글로벌 마케팅, 지역 밀착 활동을 동시에 추진했고, 마요르카는 빠르게 조직을 정비했습니다.
특히 유소년 시스템 정비와 전략적인 외국인 선수 영입으로 구단 경쟁력을 끌어올린 결과, 2부 리그에서 다시 라리가 승격에 성공했고, 안정적인 중위권 전력으로 자리 잡으며 팬들의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마요르카는 최근까지도 제한된 예산 안에서 창의적인 축구를 구현하는 구단으로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회생은 단지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위에서 소개한 구단들은 단지 돈이 부족해서 무너졌고, 돈이 많아져서 부활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진짜 무기는 바로 ‘정체성’, ‘커뮤니티’, 그리고 ‘지속 가능한 철학’이었습니다.
재정 위기는 어느 클럽에나 올 수 있는 문제지만, 그때 어떻게 대응하고,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가 진정한 회생의 핵심입니다.
재정 파탄에서 다시 일어난 이 구단들의 스토리는, 단순한 스포츠 뉴스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팬들과 지역사회의 변함없는 응원이 있습니다.